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긴 여름이 지나고 있습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2017년 여름 어떻게 보내셨나요? 학업에 치여서 혹은 일이 너무 많아서 이 좋은 날들을 두 손 놓고 바라만 보지는 않았나요? 여기 세 명의 스페셜리스트가 기록한 도심에서의 하루를 공유합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은 잊고, 단 하루만이라도 나를 위한 휴가를 선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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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온 인파 속에 나도 이방인인 양 거리를 흘러 다니다 홀린 듯 들어선, 이태원 올댓재즈. 천장을 활짝 열어둔 그곳에는 아직 여름밤의 정취가 가득하다. 계단을 올라 들어가니 관객들의 활기찬 소음 속 색소폰 콰르텟의 사운드가 내게 밀려들어 온다. 피아노 위를 누비는 배장은의 열정적이면서도 재치 있는 플레이가 드럼과 베이스의 묵직하고도 예민한 움직임과 대화를 나누고, 찌르는 듯한 소프라노 색소폰이 그 위를 날아다닌다. 연주자들은 앉았다 일어났다 무릎을 굽혔다가도 서로를 보다가 다시 관객을 바라보며 신나게 연주한다. 들뜬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면, 나도 이 소리를 따라 탁 트인 밤하늘 속을 나는 것만 같다. 흥겨운 연주에 박수를 치고 혼을 쏙 빼는 솔로에 소리를 지르다 보니 벌써 자정. 길을 나서니 먼 곳에서 돌아온 여행자처럼 모든 풍경과 소리가 새롭다. 이 여행의 장점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것! 오랜만에 내일의 일상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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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과 프로젝트 재료 리서치로 을지로와 청계천을 내 집처럼 오가는 요즘, 인사동 프로젝트 현장을 잠시 들러본다. 수많은 관광객, 위트 있는 공연, 하나쯤 있으면 기분 좋아질 법한 소품…. 넘치는 오브제 속 한창 향수에 빠져있던 중, 이게 웬일! 이따금씩 나에게 자극을 줬던 뱅크시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었다. 런던에서 그의 그래피티를 보기 위해 생소한 동네를 기웃거린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금방 다시 보게 될지 꿈에라도 알았을까. 작업은 진지해야 하고, 예술은 심오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졌을 때, 나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때렸던 그는 멋진 범죄자이자 예술가다. 덕분에 한 템포 머리를 식혔고,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위해 예술을 시작했던 지난 시절이 다시 떠오른다. 작업에 얽매여 지쳐갈 즈음 잠시 리프레시 하는 게 여행의 목적이라면 오늘의 이 순간이 나에겐 가장 특별한 여행이다. 그의 익명성을 오마주하고자 네이밍을 고민하던 때, 페인팅을 구상하던 시기들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스쳐 지난다. 일은 뒤로, 추억으로 돌아간다. 머리가 시원해진다. 아라아트센터를 나와 한동안 질려 냄새조차 멀리했던 햄버거를 먹었다. 조그마한 한국화 미술상점에 들어가 종이와 붓을 샀다. 때마침 오늘은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우산은 필요 없다. 작업실에 돌아와 떠오르는 대로 그려본다. 굉장히 눈에 익은, 하지만 마음속 아주 먼 곳에 휴가를 다녀온 기분이다.
시흥 프리미엄 아울렛 경기도 시흥시 서해안로 699 | @premiumoutlet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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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가로수길에 위치한 에크루 아웃렛에 들렀다. 기본에 충실한 미니멀한 디자인에 독특한 감성을 더한 아이템들이 즐비하다. 유즈드 섹션을 갖추고 있어 평소에 눈여겨보는 곳이다. 무채색 일색인 나의 가을 옷차림을 은은하게 밝혀줄 팥죽색 마가렛 호웰 카디건을 득템했다. 무려 정가 대비 80% 할인된 가격으로. 고즈넉한 거리를 걷고 싶어 원서동으로 향했다. 귀여운 부부가 운영하는 빈티지 숍 페얼스샵을 구경했다. 리바이스 501 블랙진이 눈에 들어왔다. 몸에 딱 맞는 빈티지 데님을 발견하기 쉽지 않은데, 운명처럼 내 사이즈라 고민하지 않고 지갑을 열었다. 아직 덥지만, 새 계절을 준비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구 공간 사옥 1층에 새롭게 둥지를 튼 프릳츠 커피에서 진한 아메리카노를 사서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돌담길을 걸었다. 사실 최근 옷보다 많이 사 모으고 있는 것이 그릇이다. 나만 알고 싶은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TWL에 들어가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며 이이호시유미코 접시 두 개를 골랐다. 서울에 1박 2일 머무는 여행객처럼 마음에 드는 가게만 찾아다니며 바쁘게 움직였다. 해가 질 즈음에는 인천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시흥 프리미엄 아울렛에 잠시 들렀다. 분더샵부터 나이키까지 입점한 브랜드가 꽤 많았고 맛집으로 입소문난 식당들이 1층부터 3층까지 고루 분포해있어 눈길을 끌었다. 아웃렛 중앙에 예쁘게 꾸며진 센트럴 가든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조카를 위해 아웃렛 최초의 마블 스토어에서 아이언맨 굿즈를 구입했고 와인앤모어에서 가족과 저녁 식사할 때 함께 즐길 와인과 혼술용 맥주를 왕창 샀다. 종일 예쁜 것에 지갑을 열고 술로 냉장고까지 채우고 나니 취향이 이끄는 대로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GUEST EDITOR & PHOTOS LEE JI MIN, KIM JEONG SEOB, NAM BO RA
DESIGNER HAN DA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