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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회색 하늘로 오는 겨울

어느덧 두꺼운 외투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주말 외출 계획이 없다면 책 한 권과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따뜻하고 조용한 방 안에서 혹은 좋아하는 카페에서 펼쳐보면 좋을 책 4권을 소개합니다.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사바하틴 알리 지음 | 이난아 옮김 | 학고재

이렇게 산 것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터키에서 독일로 유학 온 수줍고 말 없는 성격의 청년 라이프는 무심코 들어간 어느 전시회에 걸려 있던 무명 화가의 자화상에서, 그가 그토록 꿈꾸던 ‘순진함과 굳은 의지, 끝없는 따분함과 강한 개성을 합친 그 표정’을 기적같이 만나게 되면서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이토록 목마른 작품을 접한 것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작품이에요. 하나의 영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일진대, 평범해 보이는 개개인의 내면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연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가혹한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오해와 왜곡을 떠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보게 만듭니다.


분명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영혼을 받아 이 세상에 왔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를 알고 온 것이 아닌 것처럼, 떠날 때도 뭘 놓쳤는지 모르고 돌아간다. 영혼이 짝을 찾으면 구차한 설명 없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제야 우리는 진정으로, 영혼을 갖고 살기 시작한다. 모든 망설임과 부끄러움을 제치고 모든 규범도 뛰어넘어, 두 영혼은 서로 부둥켜안는다.

    이 책을 읽을 때 함께 마시면 좋을 와인
    릿지 몬테벨로 2014 미국 산타크루즈 지역의 와인으로 미국 파리의 심판 주인공. 28만원. 김해, 충청을 제외한 전점.

한강 지음 | 문학동네

하얗게 기억되는 모든 것을 통한 치유의 여정
흰빛은 겨울의 색입니다.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가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쓸쓸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흰빛이 갖는 의미는 어쩔 수 없이 상실과 연결되죠. 흰 수의와 흰 상복. 작가의 마음속에서 흰빛은 어머니가 들려준 흰 배냇저고리의 슬픈 기억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자는 주변의 흰 것들을 모아 때로는 시로, 때로는 짧은 산문으로 그들이 갖는 흰빛의 바탕을 캔버스 삼아 자신의 감정을 아련하게 투영해내죠. 저자의 슬픔과 애수가 행간에서 하얗게 배어 나와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소복이 쌓입니다.


어느 추워진 아침 입술에서 처음으로 흰 입김이 새어 나오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 차가운 공기가 캄캄한 허파 속으로 밀려들어와, 체온으로 덥혀져 하얀 날숨이 된다.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이 책을 읽을 때 함께 마시면 좋을 차
    타바론 백차 (그레이트 화이트) 48g, 4만8천원. 경기점. 지금 쇼핑하기!

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그 겨울, 그곳에 모인 우연한 인연들
아일랜드판 <맘마미아>를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소설이에요. 미망인 치키는 고향인 아일랜드의 바닷가로 돌아와 작고 목가적인 호텔을 열고, 오픈 첫 일주일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이 펼쳐집니다. 우연치 않은 기회로 이곳에 묵게 된 손님들은 스톤하우스의 저녁 테이블에서 어색한 조합을 이루지만,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황량한 돌 절벽 위에 있는 이곳에서 따스한 치유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게 되죠.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누구나 스톤하우스의 다음 손님이 되어 따뜻한 난롯가에서 차와 스콘을 대접받게 되길 바랄 것입니다.


내가 너한테 해준 말을 다 잊어버리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해. 크게 보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네 말도 맞지만, 그 작은 걸 할 수 있다면 사는 게 더 쉬워질 거야. 내 말은 다 했어. 내가 너한테 그 말을 했다는 것만 기억해.

    이 책을 읽을 때 함께 하면 좋을 간식
    더 메나주리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마카롱 세트. 5ea 1만3천원. 본점, 강남, 영등포, 광주. 지금 쇼핑하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지음 |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뼛속까지 시리게 느껴지는 러시아 저항 문학의 정수
이 책만큼 읽은 즉시 춥고 배고파지는 책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스탈린 공포정치 치하의 러시아에서 겪은 수용소 생활에 대한 작가 솔제니친의 혹독하고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어요. 주인공 슈호프와 그의 감방 동료들은 대부분 억울한 죄목으로 수감된 순박한 사람들이지요. 영하 28˚ C를 넘나드는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 강제 노동을 하며 한 조각의 빵, 한 그릇의 멀건 수프로 연명하면서도, 살아가기 위해 당장의 현실에 충실한 수용 생활의 서글프고 비참한 행태를 유유히 고발한 걸작입니다.


적어도 지금의 슈호프는 무엇에 대해서나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기나긴 형기에 대해서도, 또다시 일요일을 빼앗긴다는 불길한 소식에 대해서도, 지금 그의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어떻게든 살아보자는 생각뿐이다.

    이 책을 읽을 때 함께 하면 좋을 간식
    로이즈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샴페인 ‘피에르 미뇽’이 첨가된 부드러운 생초콜릿. 1만8천원. 본점, 강남, 센텀시티, 대구, 광주. 지금 쇼핑하기!



WRITOR IM SANG MI
EDITOR HAN JI HYE
출처 SHINSEGAE 11월호